- 본문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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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벌레 울어서 깊어가는 가을. 귀뚜라미 울어서 길어지는 밤, 밤이 길어서 외로워지는 가을. 코스모스가 길마중을 나서면 옛 가던 길이 가고 싶어서 어쩔 것이며, 모르는 사람들이 그리워지면 또 어쩌나.
산자락의 외진 곳에 들국화가 피어나면, 떠나간 사람들이 보고 싶어져 또 어쩌며, 눈물 젖은 발자국을 돌아보지 말자 했는데 세월의 강 저편이 그래도 그리워지면 또 어쩌나. 한 뼘씩 한 뼘씩 밤이 길어져 옛 살던 그날이 마디마디 서러워서 은하수 끝자락에 회한의 눈물을 흘려 적시면 또 어쩌나.
실바람도 잠들어 깊어진 밤, 오지랖 들추어 그리움 한가득 다독다독 묻어놓고, 울어서 길어진 밤을 남겨두고 귀뚜라미는 흔적도 없다.
날이 밝으면 어디든 나서야겠다며 베란다로 나서서 하늘을 본다. 찬 이슬에 젖어서 높아진 새벽하늘, 별빛은 아직도 초롱초롱한데 실낱같은 그믐달이 애달프게 처량하다 - 10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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