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문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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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떴다. 지독하고 끔찍한 악몽에서 깨어난 기분이다. 운전석에 앉아 있는 나는 가로등 불빛이 켜지기 시작한 어둑어둑한 거리를 보았다. 본연의 색이건만 아주 잠깐 흑백의 세상이 아닌가 하는 착각을 했다.
정말 다시 돌아온 건가. 이런 생각을 하며 룸미러를 보았다.
지인의 얼굴에 검은 가루가 팩을 한 것처럼 묻어있었다. 티슈로 얼굴과 손에 묻은 검은 가루를 닦은 후 배를 어루만졌다. 태동이 느껴졌다. 정말 다시 돌아왔다.
방금 전 지인은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마지막 넘어가는 숨을 참으며 간신히 버티던 지인은 아이를 걱정하지 말라는 내 말을 듣고 작은 위로를 느꼈을 것이다.
모든 것이 끝났다. 내가 임신한 시간으로 다시 돌아올 줄 상상도 하지 못했다. 내 아기가 지인의 다리 사이로 들어가는 장면을 목격하기 전까지는. 지인의 몸으로 이동했을 때도, 호수에서 하준의 그림자로 탄생했을 때도 아기는 죽지 않았다.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에 있던아기는 본능적으로 살기 위해 다른 존재를 찾았던 것뿐이다.
나는 지인의 임신을 기다렸다. 그래서 규민을 잠시 살려주었고, 현실의 나에게 지인에게 강사 채용까지 알려주라는 기억을 남겼다. 두 사람을 다시 만나게 하기 위해서. -48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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