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문 소개
-
광주대단지 또한 계획된 국가행위에 의해 만들어졌지만, 이는 국가의 일반적인 도시계획 아래 조성되는 보통의 신도시와는 판이했다. 빈민 하층민의 집단거주, 천막과 판잣집 생활, 극심한 가난, 생활기반시설과 도시 인프라 부족, 생산시설과 고용기반 결여 등 대단지와 이곳 주민이 처한 상태는 집단수용소나 다름없었다. 전쟁이나 기아로 인한 난민촌과도 같았으며, 격리된 고립무원 상황은 특정 종교인이나 소수자 집단을 강제로 격리해 살게 하는 게토ghetto를 연상시킨다.
최소한의 의식주 생활은 물론 안전과 생명까지 위협받았다는 점에서 대단지 만들기는 새 주거지를 조성하고 위성도시를 건설한다는 구실 아래 행해진 국가의 폭력이나 다름없었다. 판잣집 철거와 이주가 기본적으로 공권력 동원에 의한 강제행위였다는 점에서 그것은 하층민을 상대로 한 국가의 억압정책이자 배제의 통치전략이기도 했다. 이 무렵 서울에는 한강과 여의도 개발, 영동 개발 등 신중산층을 위한 도시개조 정책이 그야말로 근대도시에 어울리는 방식으로 차근차근 추진되고 있었다. 이와 비교하면 광주대단지는 도시계획법에 따라 충족돼야 할 주거시설과 생활기반시설이 담보되지 않은 임시수용소에 불과했다. 사회적 약자를 누르고 배척하는 국가권력의 속성이 어김없이 드러난 정책 모순의 현장이었다.
이처럼 광주대단지는 산업화 과정에서 발생한 도시빈민을 서울이라는 대도시에서 분리하는, 그래서 중심부 사회로부터 배제하는 공간적 장치이자 계급 차별적인 통치의 도구였다. 광주대단지는 산업화로 인해 급증한 인구를 재배치하려는 인구분산 도시라기보다 위험하고 비위생적인 빈민층을 외곽으로 옮겨 집단 수용하는 계층분리 도시로서 더 적절하게 운용되었다. -156~157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