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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을린 욕망
풀에 점령당한 텃밭에는 채소의 흔적이 그림자처럼 어른거린다. 풀 사이로 삐죽하게 솟은 파가 보이고 연두색을 띤 잎이 보여 상추가 있으리라 짐작이 갈 뿐이다. 마당에도 잡풀들이 점령군처럼 으스대며 세력을 뽐내고 있다.
방안에서 엎드린 채 당신은 눈이 부신 듯 반쯤 뜬 눈으로 마당과 텃밭을 한 시간째 보고 있다. 가끔 눈이 깜빡거리지 않는다면 잠을 자거나 죽은 사람으로 오인될 수 있는 모습이다. 핏기없이 하얗고 삐쩍 마른 얼굴이 마치 데스마스크 같다.
당신은 미라가 천 년의 먼지를 틀고 일어서듯 천천히 상체를 일으킨다. 반쯤 뜬 눈은 여전히 초점이 없다. 힘겹게 상체를 일으킨 후 또다시 꼼짝하지 않고 텃밭과 마당을 본다. 아니, 어쩌면 텃밭과 마당을 내리쬐고 있는 햇빛을 보는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당신은 햇빛을 보 는 게 아니라 실은 아무것도 보지 않고 있는지도 모른다. -10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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