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문 소개
-
이정구를 시작으로 연안이씨는 경화사족에서 문장과 학문, 더 나아가 정치적으로 중요한 위상을 갖게 되었다. 이정구의 아들인 이명한(李明漢)과 이소한(李昭漢) 모두 문과에 급제하였고 이조판서와 대제학을 역임하였다. 이어 손자대인 이른바 8상(八相) 중에 이일상(李一相), 이가상(李嘉相), 이만상(李萬相), 이단상(李端相), 이홍상(李弘相), 이유상(李有相) 등 6명의 문과 급제자를 배출하는 등 그야말로 가문의 위업을 드러냈다. 이런 가운데 이일상은 예조판서를 비롯해 대제학을, 이단상은 부제학을, 이은상은 형조판서를, 이익상은 의정부좌참찬을 역임하였다. 특히 이일상은 조부인 이정구, 부친인 이명한을 이어 대제학을 역임함으로써 3대에 걸쳐 문형(文衡)을 배출한 가문이라는 영예를 갖게 되었다.
연안이씨는 문장 뿐 아니라 학문에서도 일가를 이루었다. 대표적인 인물이 정관재(靜觀齋) 이단상(李端相)이다. 이단상의 경우 문과 급제 후 세자시강원 설서를 비롯해 사간원 헌납이나 병조 정랑, 이조 정랑, 홍문관 응교 등 이른바 청직(淸職)을 두루 역임하였다. 그러나 37살 인천부사를 거쳐 사헌부 집의를 끝으로 관직 생활을 청산하고 경기 양주 영지동 일대(현재의 남양주시 진접읍 내곡리 일대)에 정관재라는 서재를 짓고 은거하였다. -23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