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원의 풍속화나 춘화는 조선조의 성리학적 세계관과 충돌한다. 혜원의 그림은 성리학적 관념의 세계를 그린 문인화와는 달리 인간의 본질적인 모습을 추구한다. 혜원은 관념의 세계가 아닌 당대 사람들의 삶의 모습 속에서 미학을 추구한다. 그의 예술행위는 천박하고 음란하다는 이유로 배척당한다.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주체는 체제를 수호하려는 기득권 세력이다. 양반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양반의 벌거벗은 모습을 표현한다는 것은 체제에 대한 도전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역학구도는 지금도 다르지 않다.
예술가에게 있어서 표현의 자유는 생명체의 생존의 조건인 공기와 같은 것이다. 이 시대의 석학 노암 촘스키는 나치의 홀로코스트를 증오하지만 나치를 옹호하는 글을 쓰다가 해직된 포리송 교수를 구제하기 위한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는 탄원서」에 기꺼이 서명했다. 표현의 자유는 내용의 옳고 그름에 우선하기 때문이었다. 고창근 작가는 이러한 자신의 예술적 관점을 바탕으로 혜원의 그림 세계를 산책한다. 이 소설의 사용설명서를 쓰라면 이렇게 쓰겠다. 재미있고 유익하다. 단 기득권을 가진 권력자들이 보면 다칠 수 있다.
권서각(시인 ․ 문학박사)